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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있음) 미완의 완성 ... 혼불책을 봐야지! 2018. 1. 22. 19:27네이버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2006. 9. 14. 23:06)...
책 읽기는 정말 좋아하지만, 사실은 읽는 순간만을 좋아할 뿐 그 책의 깊은 의미를 탐구 해보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단점이구나.. 이것이 현재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중간 점검 결과다. 하지만 머리가 조금씩 단단해지면서 이제서야 슬슬 책이 주는 가치가 결코 범상치 않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책에는 배울 점이 너무나 많고 그 많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심지어 읽었던 책의 주인공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뇌손상을 입은 것은 아닌가 하고 느껴질 정도로 후회 막심하다.
얼마전 경제사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다. 책은 무조건 맨 정신, 깨끗한 정신으로 읽어야 하며 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엄숙한 과정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술을 마시면 경제 수학 문제를 풀곤 하셨다면서도 독서만큼은 깨끗한 정신으로 임했다고 한다."왜?"거기에는 타인의 일생이, 타인의 소중한 기억과 경험이 녹아들어 있기때문이란다..내가 읽은 책중 이 말씀을 가장 강하게 떠오르도록 하는 책들 중 하나가 바로 혼불이다. 전라도 어느 지역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만주까지 넘나들면서 일제강점기 시대를 조망하고 있다. 역사적 흐름위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그친다면 그저 개성 없는 역사 기반의 소설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혼불에는 말 그대로 진지함이 있고 작지만 힘있는 목소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움 그 자체가 있다."... 우리의 선조나, 누구 대에 들어왔던 간에 저 살던 고향과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떠나올 적에는 저마다 죽지 못해 목숨만 붙어있는 사연이 있겠지요? 우리 모두 기가 막힌 정황중에 오로지 쪽박 하나 차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우리가 가진건 쪽박 하나 뿐이에요. 그 쪽박에다가 조선을 다 담아가지고 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쪽박에 담긴 조선도 조선은 조선이에요 ..."표현의 아름다움만 아름답다고 할 수 없음을 이 책을 통해 소름끼치게 깨달았다. 약한 사람에 대한 연민, 모진 삶을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필치는 너무나 숙연한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어째서 슬프지 않은 몇 줄의 문장에서조차 나는 슬픔과 감동을 느꼈을까? 그것은 분명 정성스러운, 너무나 진지하고 정갈한 그 필치의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전통의 종갓집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이 펼쳐지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그래서 그 압력에 너무나 힘들어하는 종손과 새로운 사상에 도취된 사촌형제의 행적이 있다. 신분의 벽을 넘기 위한 이름 없는 자들의 모진 인생살이도 있다. 가진 것 없는 세상살이의 고통스러운 발자욱이 새겨져 있는가 하면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당사자들의 아픈 가슴도 작으나마 고동치고 있다. 시대는 흘러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사람들이 저마다의 유쾌하고 슬프고 아름답고 추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책은 전체가 10권이다. 그것이 처음에는 저 높은 산처럼 보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절반을 읽었을 때, 제 9권을 읽었을 때, 그리고 마지막 10번째 권을 읽을 동안에도 나는 이 책이 정말 10권으로 끝나야 하는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까운 사랑의 비극을 읽으면서, 방황하는 종손이 혈육과, 스승과, 주변인들과의 교감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자각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평화로운 민촌의 위험한 모략을 읽어가면서 도저히 이야기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다행이기도 하다. 너무나 늦었지만 내가 이렇게 혼불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전통사회와 그 풍속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있어 즐거웠고 많은 인물들의 고동치는 인생사가 있어 가슴이 뭉클했던 시간들이었다.뒤늦게야 나는 작가 최명희님이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셨고 그것이 이 미완의 완성작을 남기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임을 알게되었다. 그저 나의 무지함이 너무나 죄송스러울 따름이다.처음의 느낌과는 너무나 다른, 마지막 10권의 마지막 마침표를 깊숙히 들여다 보면서 나는 쉽사리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20권이면 어떻고 100권이면 어떻겠는가.. 하지만 이야기는 상상의 나래만 남겨놓은채 훨훨 날아가버린지 오래다. 그 나래를 타고 사라진 이야기의 자취를 따라가고 싶지만 나의 능력이 모자람이 한탄스러울 따름이다.삶에 대한 진지함과 엄숙함이 혼불의 저변에 흐르는 사상이라면 다음의 글은 상징적인 대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썩어서 썩지 않는 그대.. 결코 순탄치 않은 시대와 역사, 진부한 인습, 억울한 관념의 편벽이 그대들을 상하게 할지라도, 오히려 저마다 제 몸으로 깎은 화병(花甁)하나, 삶의 중심에서 빚어낸다면, 그 몸에 어리는 무늬들은 이윽고 이 세상에 새로운 풍경을 이루어 드리울 것이니..."'책을 봐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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