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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제5권 - 팔만대장경책을 봐야지! 2018. 2. 24. 22:09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 왔습니다. (2007. 3. 1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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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은 등잔을 가까이 끌어당겨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갔다. 세필로 쓴 잔글씨 하나하나에는 더할 수 없는 정성이 깃들여 있었다. 잔글씨인데도 획 하나 흐트러진 데가 없었고, 선 하나 뭉개진 것이 없었다.
도림은 전신이 찌르르 울리는 전율을 느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는 수없이 많은 목판이 떠올랐다. 합천 해인사에 봉안된 팔만대장경의 목판들이었다. 칠팔 년 전 행각을 나서서 팔만대장경의 목판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전신을 휩싸고 돌던 전율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글씨들의 균형 잡힌 미려함도 놀라웠고, 그 글씨들을 어느 한 군데 흠내지 않고 나무판에 새긴 그 정교한 솜씨야말로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자를 모두 양각한 것에 탄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양각을 하되 그냥 나무판을 파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글자들의 행간과 행간 사이사이를 마치 밭고랑 치듯 양쪽 글자에서 행간의 중간지점으로 비탈지게 깍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유심히 들여다보면 행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위아래 자간은 물론이고 한 글자의 획간까지 빠짐없이 비탈깍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바탕을 직각으로 깎아낸 보통 인장과는 그 모양이 전혀 달랐다.
그 어려운 비탈깍기를 한 연유가 기막혔다. 목판이 서로 씻기거나 부딪쳐도 비탈진 바탕의 힘을 받아 글자의 획들이 금가거나 깨져나가는 것을 막고, 또 판본을 찍어낼 때마다 글자들이 받게 되는 압력을 비탈진 바탕이 떠받치게 해서 글자들의 획 하나하나가 누르는 힘을 고루 받고, 쉽게 마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그 지혜도 놀라운데다가 한층 더 놀라운 것은 비탈깎기를 한 솜씨였다. 칼질을 직각으로 한 다음 나머지 바탕을 파내버리는 것보다 행간, 자간, 획간의 중간지점을 잡아 양쪽에서 비탈지게 깎아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비탈의 어느 한 군데에도 나무부스러기가 붙어 있거나 흠집이 나 있지 않았다. 두 번 손대지 않고 단 한 번의 칼질로 끝낸 것처럼 매끈하고 말끔한 비탈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행간과 행간의 양쪽 비탈들은 매끈한 칼자국들이 마치 잔 물결치듯 하며 나뭇결과 함께 고아한 무늬로 드러나고 있었다.
글씨에서부터 새김까지 그건 단순히 기술이거나 솜씨라고만 할 수가 없었다. 기술이라면 신기요, 솜씨라면 신술이라고 해야 옳았다. 그러나 그건 엄연히 사람의 손으로,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건 다름아니라 사람의 온 정성을 다 바친 정성의 덩어리였다. 수많은 필생들과 각수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있는 정성을 다 쏟아부은 모습이 7백 년의 세월을 넘어 글자 한자, 한자에 생생히 살아 있었다. 그 세월을 뛰어넘은 정성의 생동감이 섬뜩섬뜩 전율을 일으켰다.
그들이 목판에 쏟은 정성은 바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염원이었다. 도림은 바랑에서 꺼낸 필사본에서 똑같은 염원을 느꼈던 것이다. 조선의 역사를 적어내려간 그 글씨들에는 너무나 진한 정성이 배어 있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기계인쇄로 책들이 찍혀나오고, 간편한 등사기로도 같은 내용을 손쉽게 수백장씩 밀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필사를 한 것이었다. 그것도 똑같은 내용을 세 차례씩이나 쓴 것이 아닌가. 그 미련할 만큼 독한 정성에 도림은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라 되찾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어느 선비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바친 정성을 도림은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 조정래, 아리랑 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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