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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 김훈책을 봐야지! 2018. 1. 2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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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2006. 11. 6. 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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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놀이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삶이 되는 것이 있다.그래서 왠만하면 아무리 유치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최대한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애써본다. 그것이 내게는 무의미하다해도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소중한지 가늠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 이 분이 등단한 것은 매우 늦은 나이라고 한다. 세상과 부대끼며 치열한 삶을 살아왔고 말그대로 대단히 깊은 내공을 쌓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읽은 김훈 님의 작품은 군대에서 본 칼의 노래 한 권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품이 주는 강렬함은 감히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군대에서의 독해지고 황량해진 마음이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문자의 힘을 그렇게 절실히 느낀 작품은 얼마 없을 것이다.
자전거 여행.. 자전거 여행.. 이 분이 이런 취미도 있었나 생각했다. 김훈 님도 나처럼 자전거를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이렇게 자전거를 제목삼아 책을 내시다니.. 처음에는 정말 가볍게 생각했다. 여기저기 정말 좋은 곳을 다니시면서 좋은 글을 썼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그것이 아니었다..
자전거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오고 있다. 자전거 위에 물음표처럼 몸을 숙인 원색의 헬멧과 사이클복의 조화는 이국적이었다.
'저 모던보이좀 봐!' 그가 바로 청년 김훈 이었다.
자동차와 문명이 통제된 길들을 저렇게 날렵한 물음의 자세로 탐문하며, 굴리면서 굴러가고, 싣고가면서 실려갔었구나!
자전거와 한 몸 되어 다만 밀고 나갔었구나. 밀고나가는 순간 길의 몸이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렸었구나.
"하동 재첩국은 순결한 원형의 국물이다 ... 맺고 끊기는 데가 전혀 없이 풀어진 맛이다. 부추가 그 풀어진 맛에 긴장을 준다. ... 푸른 부추가 뽀얀 국물에 우러나서 그 국물의 빛깔은 새벽의 푸른 안개와도 같다. ... 가장 낮은 곳에 사는 가장 작은 조개 속에 가장 깊은 맛이 들어있다."
"근본적으로 숲은 재화를 공급하는 공장이 아니다. 숲의 경제성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림 조성은 대부분 실패했거나 그 경제성이 검증되지 않고 있다. 산림청도 이건 일부 인정하고 있다. ... 숲이 죽었으니 새 숲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숲은 죽지 않았다. 숲은 죽지 않는다."
결코 단순한 여행의 한담을 늘어놓은 책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소설가 김훈의 내면의 목소리가 있었다. 칼의 노래로 장군 이순신의 내면을 절절하게 풀어냈다면 이번에는 그 자신의 내면을 풀어놓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들은 결코 객관적이지도 않고 단조롭게 읊는 감흥 없는 시도 아니다.
"퇴계의 산행은 돌아서서 산과 함께, 산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오기 위한 산행이고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한 산행이다. 마음속으로 산을 품고 내려오려 해도 산은 좀처럼 따라오지 않는다. 휴일의 날이 저물고 사람들 틈에 섞여 산을 내려올 때, 성인은 벌써 산을 다 내려가서 마을에 계신다. 천하에 무릉도원은 없다."
안동을 찾아가서는 퇴계의 삶을 나지막이 살펴보고,
"선암사 화장실은 300년이 넘은 건축물이다. ... 안은 사방에서 바람이 통해서 서늘하고 햇빛이 들어와서 양명하다. 남자, 여자 칸은 철벽으로 가로 막힌 것이 아니라 같은 건물안에서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
선암사 화장실은 변소의 칸막이 담이 높지 않다. 똥 누는 일은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파트 변소 처럼 감옥 같은 공간에 갇혀서 해야할 일도 아닐성싶다. 똥을 누는 것은, 배설물을 밖으로 내어보내는, 자유와 해방의 행위다. 거기에는 서늘함과 홀가분함이 있어야 한다."
고찰의 화장실에서는 현대의 문명의 결핍된 요소를 떠올리며 우울해한다.
"전남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는 섬의 서남쪽 바닷가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오랜 세월 함께 모여 노래해온 주부, 할머니들의 자생적인 노래방이 있다. 도시에 가라오케 노래방이 창궐하기 훨씬 전 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노래 모임을 노래방이라고 불렀다. ...
소포리 노래방 사람들은 노래방에서 들노래를 할 때 방바닥에 모를 꽂는 시늉을 한다. 그네들은 남의 노래가 아닌, 자기네 삶의 내용과 정서를 노래하고 있었다. 그 신명의 힘으로 소포리 사람들은 새 봄의 노동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기도 한다.
정말 여행이란 그런 것이구나하는 그 사실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이것이 김훈 작가 혼자만의 작품이겠는가. 여행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는 드러나지 않아도 저마다 마음속에 저런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이왕이면 홀로 여행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많은 것을 보며 깨달음을 얻게되지 않을까?
가끔 홀로 정처없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보면 저멀리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매번 보는 장면조차, 때가 달라질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저무는 해를 보며 떠오르는 심상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수 없다. 잠시 나가서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무수한 상념이 떠오른데 하물며 홀로 떠나는 여행이란...
정말이지 자전거에 한 몸 의지하고 멀리 떠나고픈 마음이 한 동안 떠나질 않았던 것 같다. 결국은 우유부단한 내게 실망만 하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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